'아집인가, 혜안인가'…감원 태풍 속에서 고요한 '애플' [글로벌 핫이슈]

입력 2023-02-10 17:34   수정 2023-02-10 17:42

지난해부터 미국 실리콘밸리가 쑥대밭이 됐습니다. 경기침체가 접어들며 빅테크가 줄줄이 감원을 발표해서입니다. 메타(옛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이 대규모 구조 조정 계획을 밝혔습니다. 화상회의 업체 줌, PC업체 델, 야후도 해고 행렬에 합류했습니다.
감원 칼바람에도 끄덕않는 애플
지난 1월 한 달간 미국 IT업계 해고 인원만 7만 5000여명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인력만 감축한 게 아닙니다. 최고경영자(CEO) 연봉도 대폭 깎았습니다. 골드만삭스 CEO인 데이비드 솔로몬의 연봉은 전년 대비 30% 삭감됐습니다.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CEO의 연봉은 전년 대비 10% 줄였습니다. 팻 겔싱어 인텔 CEO도 25%를 깎을 예정입니다.

침체 한파를 대비하려는 고육책입니다. 이 와중에 자기 연봉은 깎아도 사람은 내보내지 않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애플입니다. 팀 쿡 애플 CEO는 올해 자신의 연봉을 40% 삭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지난 2일 애플의 실적발표날 회사가 위기에 놓였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비용을 절감하거나, 정리해고, 전략 변경 등은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컨퍼런스 콜에서 "어떤 도전에 직면하든 애플의 전략은 항상 같다"며 "혁신과 사람에 대한 투자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어떻게 팀 쿡은 애플 직원을 지켜낸 걸까요. 그의 신중한 성격이 애플을 보호했습니다. 우선 애플은 코로나 팬데믹에도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9월 15만 4000명이었던 애플 직원 수는 2022년 9월에는 16만 4000명으로 1만 명 늘었습니다. 약 20%가량 증가한 셈입니다.

같은 기간 알파벳은 64%, 마이크로소프트는 50%씩 인력을 늘렸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아마존은 직원 수를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2019년 75만여명에서 2021년 약 150만명까지 증가했습니다. 메타도 2019년 4만 3000여명에서 2022년 8만 7300여명까지 급증했습니다.

코로나19 앤데믹(풍토병화)이 도래하자 보복 소비를 노리고 사업을 급히 확장했다는 분석입니다.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혼란이 극심했던 지난해 과잉투자였다는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온라인 쇼핑, 메타버스 등 디지털 소비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금리가 오르고 자본시장이 경색되자 유동성이 메마른 기업들은 결국 직원을 내보냈습니다.
팀 쿡의 신중한 리더십이 빛 발해
쿡 CEO는 신중한 경영 스타일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쿡 CEO는 위험이 큰 프로젝트에 큰돈을 쏟아부은 적이 없습니다. 핵심 사업이 아닌 곳에는 시간이든, 돈이든 쓰지 않는다는 기조를 지킨 겁니다. 혁신적인 신규사업 '문샷(Moon Shot)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구글, 최첨단 연구팀을 운영하는 아마존이나 MS, 메타버스에 역량을 쏟고 있는 메타와는 다릅니다.

펀더멘털도 튼튼합니다. 다른 빅테크와 차별화되는 지점입니다. 애플은 광고가 아닌 휴대전화와 태블릿, PC 판매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광고 산업의 영향을 덜 받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지만 거대한 물류 허브 네트워크를 갖춘 아마존과 비교하면 물리적인 공간이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습니다.

미국 기술 자문·연구사 무어 인사이츠 앤 스트래티지의 패트릭 무어헤드 수석분석가는 "애플이 아이폰 등의 제품 제조를 제삼자에게 아웃소싱하는 점이 강점이다"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애플은 자체적인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이 덕분에 스마트폰 수요 변화의 영향을 덜 탄다"고도 덧붙입니다.

쿡 CEO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런 성과가 이해됩니다. 그는 1998년 애플에 입사하기 전까지
컴팩의 자재 조달 담당 부사장을 지냈습니다. 당시 컴팩은 1000달러 이하 저가 데스크톱을 출시해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었습니다. 쿡은 컴팩에서 주문생산(BTO) 제조 모델을 적용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수요를 예상해 제품을 만들어 창고에 쌓아두는 게 아니라 주문 접수 후 제품을 제조해 유통하는 방식입니다.

1997년 당시 애플은 미국 새크라멘토와 아일랜드, 싱가포르에 공장을 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복귀 이후 제조 단계의 일부를 한국, 중국 등의 협력 업체에 맡기기 시작했다. 쿡은 소수의 공급업체를 선별했고 거의 모든 부문을 아웃소싱으로 전환했습니다.

재고 축소를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애플이 1996년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이유도 재고 관리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쿡 CEO는 컴팩에서처럼 제조 공장에서 곧바로 배송하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창고가 있으면 재고가 쌓인다”는 게 그의 신조입니다.

쿡 CEO가 애플에 합류한 지 7개월 만에 재고는 ‘30일 치’에서 ‘6일 치’ 물량으로 줄었습니다. 1999년에는 2일 치까지 축소했습니다. 그가 합류한 뒤 애플은 세계 최고 SCM(공급망 관리)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애플의 남은 과제는?
그의 리더십 덕에 직원은 지켜냈지만 애플의 상황이 마냥 낙관적이진 않습니다. 지난해 4분기 애플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습니다. 2019년 이후 처음으로 매출이 역성장했습니다. 순이익은 13% 빠졌습니다.

그래도 쿡 CEO는 낙관합니다. 그는 실적발표회에서 "현재 세계에서 20억대에 달하는 애플의 제품이 사용되고 있고, 아이폰 14라인의 생산을 지연시키던 공급망 문제도 해결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웃는 이유가 있습니다. 애플의 지난해 서비스 부문 매출이 792억달러에 달합니다. 항공기 제조사 보잉(666억 달러), 반도체 회사 인텔(631억 달러), 대형 항공사 아메리칸항공(490억 달러)의 지난해 실적을 넘어서는 수준입니다.

코카콜라(423억 달러), 넷플릭스(316억 달러)도 제칩니다. 맥도날드(233억 달러)와 나이키(491억 달러)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애플의 서비스 매출이 많습니다. IT업계에서 "느리고 지루하다"는 평가를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점진적으로 확장한 결과입니다.

올해 애플에 남은 과제는 하나입니다. 바로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입니다. 앞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챗GPT를 도입햇고, 구글은 서둘러 바드를 발표했습니다. '대(大) 인공지능 전쟁'이 펼쳐질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애플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이미 무기는 갖췄습니다. 초당 15조 8000억회의 연산이 가능한 인공지능 반도체 칩인 'M2'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 본사에서 다음 주 내로 애플은 본사에서 대면 회의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업계에선 'AI를 위한 미니 애플 세계개발자대회(WWDC)'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단 애플 직원들만 참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온라인 중계도 직원들에게만 보여줍니다.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기밀을 유지해 온 애플만의 방식입니다. 올해 '진짜' WWDC에선 달라진 시리를 마주할 거란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입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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